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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돈하는, 인생 탐구

C.S. 루이스의 [책 읽는 삶] 리뷰 | 존재의 확장, 동화의 힘, 기억보다 중요한 독서

by 키다리 가로등 2026.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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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삶
_2019 C.S.루이스 (1898~1963)_국내2021
 
우리는 보통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무엇을 얼마나 기억하는지를 독서의 기준으로 삼기도 합니다.
하지만 C.S. 루이스 의「책 읽는 삶」에서 독서는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삶의 변화를 낳는 경험, 다시 말해 존재를 확장하는 행위로 바라봅니다.
 
<나니아 연대기>,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로 잘 알려진 루이스는 에세이와 편지에서 그의 독서에 관한 사유를 느껴보세요.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하고 계시다면, 이 책 속에 소개된, [오만과 편견], [호빗], [반지의 제왕], [허클베리핀의모험], [단테 신곡], 조지 맥도널드 소설을 다시 꺼내보세요. ^^

목차박스
1. 루이스의 독서습관, 색인
2. 독서에 대하여
    - 존재의 확장
    - 동화는 아이를 속이지 않는다
    - 글쓰기를 위한 조언
3. 마무리
4. 잠깐,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 모든 것을 기억한 사람


1. 루이스의 독서습관, 색인

루이스는 “읽은 것을 대부분 기억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진처럼 저장하는 기억이 아닙니다.
루이스의 기억은, 이미 자기 사고체계 안에 편입해둔 깊이 이해한 세계입니다.
 
그의 독서습관 중 하나인 "밑줄쳐 둔 단락 끝에 색인만들기"가 있어요. 그는 밑줄을 긋고 책 맨뒤에 지도, 인물계보, 색인페이지 만들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색인 단어는 '키워드+방향'으로 적어놓았을 것 같아요. 요즘 세상엔 인덱스용지나 디지털색인(메모앱, 노션 등)으로 많이 사용하시죠.

색인을 해 놨다는 것은 계속 찾아서 활용했다는 거니까, 그의 이런 독서 습관은 기억을 계속 고착시키는 효과도 있었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기 위한 도구가 되었다고 보여집니다. 
 

2. 독서에 대하여

 

1) 독서는 존재의 확장

p20~22  [지식은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이고 체험적으로 아는 것이다. 우리가 곧 타인의 자아가 되는 것이다. 단순히 타인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이 보는 것을 우리도 보기 위해서다. 거대한 극장에서 잠시나마 타인의 자리에 앉기 위해서다. 타인의 안경을 쓰되 그 안경에 비치는 모든 통찰이나 기쁨이나 공포나 경이나 흥취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다. (중략)
 
우리의 존재가 엄청나게 확장된 것은 작가들 덕분이다. 좀체 책을 읽지 않는 친구와 대화해 보면 이 점이 제대로 와닿는다. 그는 아주 선량하고 사리 분별력도 꽤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사는 세계는 너무 작다. 우리라면 아마 그 속에서 숨이 막힐 거시다. 자기 자신으로만 만족하다가 결국 자아 이하가 된 사람은 감옥에 갇혀 있는 것과 같다. (중략)
 
나는 내 눈만으로 부족하기에 타인의 눈으로도 볼 것이다. 여러 사람의 눈으로 보더라도 현실만으로는 부족하기에 타인이 지어낸 허구의 세상도 볼 것이다. 온 인류의 눈으로도 부족하다. 나는 동물이 책을 쓸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동물도 책을 쓴다면 생쥐나 꿀벌에게 사물이 어떻게 비치는지 아주 ㅈ르겁게 배울 것이고, 온갖 정보와 감정으로 가득한 개의 후각 세계도 더 즐겁게 탐색할 것이다]
 
☞ 존재의 확장에 대해서 생각해봤어요.
내가 살아보지 않은 삶의 감각이
내 내부에 실제 경험처럼 자리 잡는 것.
문학은 존재를 이식하는 것.
경험의 차원이 커지는 것.
 
책을 거의 안 읽는 사람의 세계는 "내가 직접 겪은 것 + 주변 사람 몇 명의 이야기 + 뉴스·소문·상식" 등 자기 경험이 세계의 중심이 됩니다.
하지만 독서를 통해 존재가 확장된 사람의 세계는 수백명의 삶과 인생, 시대·계급·성별·윤리가 다른 내면들로, 내가 살 수 있는 세계의 크기가 넓어진다는 의미입니다. 
 
문학은 인간을 관찰하기 위한 모형, 현실을 선명하게 보기위한 도구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이런 조건에서 이런 선택을 하도록 설계된 인간이구나'라는 것을요.
 

2) 동화는 아이를 속이지 않는다

 

p41 [백 년쯤에 한 번씩 헛똑똑이가 나타나 동화를 몰아내려한다. 아이들에게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잘못된 인상을 심어 준다는 이유로 동화를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동화야말로 그다지 잘못된 인상을 주지 않으며, 오히려 학교소설이 아이들을 속일 소지가 훨씬 높다. 일상과도 같은 학교생활에 '굉장히 인기 있고 성공한 아이'를 보며 동경하게 되는데, 책이 끝나면 성공을 얻을 수 없는 현실에 불행해진다. 이는 동화나라를 동경하는 것과는 다르다. 동화를 읽는 아이는 갈망한다는 자체로 행복하고, 현실세계에 약간의 마법이 걸리며 새로운 차원의 깊이를 더해준다.
또 이야기에 등장하는 폭력과 유혈 상황은 아이들의 머릿속에 병적인 공포를 자아내지도 않는다.]
 
☞ 오히려 학교소설이 현실인 척하는 허구라는 말입니다. 현실가 너무 닮아 있어서 거짓임을 알아채기 어렵게 만들어요. 소설 속 성공 모델은 매우 제한적이고 현실에서는 극소수만 가능한 거니까요. 현실판 소설은 성공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동화는 "이렇게 살아도 괜찮아"라는 깊이를 건네는 것 같네요. 어떻게보면 학교소설은 환상을 다루고, 동화야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진실을 다루는 것 같아요.
 
동화는 성격묘사를 동물캐릭터로 설정합니다. 캐릭터를 그냥 이미지로 즉시 인식시키죠. 설명이 따로 필요없어요. 이건 특히 아이 독자에게 매우 중요한 것 같아요. 어른 독자에게는 유머를 주지요.
한 단계 더 들어가서 인간을 직접 비판하지 않기 위한 안전장치 같기도 합니다. '사람이 나쁜 건 아니야. 내가 나쁜 건 아니야'라는 심리적 거리감 안에서 자신을 성찰할 수 있게 합니다. 아이는 자기 안의 나쁜 마음을 "나쁜 존재 그 자체"로 동일시하지 않고, 다뤄야 할 대상으로 인식할 수 있어요. 정서발달에도 좋죠. 
 

3) 글쓰기를 위한 조언

 

p172 [자신만의 문체를 개발하려면, ① 본인이 하려는 말을 정확히 알아야 하고, ② 만전을 기하여 정확히 그것만 말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려는 말을 독자가 처음에는 모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가끔 저는 글쓰기란 양 떼를 몰고 길을 가는 것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왼쪽에든 오른쪽에든 문이 열려 있으면 독자는 당연히 아무 문으로나 들어가지요.]
 
☞ 글쓰기는 똑똑함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 오는 사람을 데려오는 것입니다. 글쓰는 사람들은 그 주제가 너무 익숙하기에 때론 설명할 필요가 없어보이거든요. 독자는 그렇지 않는데... "이건 다 알겠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글 속에 보이지 않는 문이 하나 열려 독자들이 빠져나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친절하고 다정다감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양떼를 몰 때는 한 길만 열어둬야 하듯이, 불필요한 문장은 빼고 생각을 정확히 하고, 독자를 끝까지 데려가야 합니다. 방향없는 설명은 설명과잉이 되고, 연결이 매끄럽지 않으면 설명부족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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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무리

 
독서는,
기억의 수단이고,
이해의 과정이며,
존재의 확장이 됩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경험입니다.
 
그래서 "서울대 추천도서 100" 뭐 이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독서는 성과가 아니라 변화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읽는 동안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잠시 다른 존재가 되어 다른 눈으로 세계를 바라봅니다. 그 경험은 현실을 더 깊게 살아가는 준비가 됩니다.
 
동화가 아이의 세계에 마법을 더하듯,
독서는 우리 일상에 조용하지만 분명한 깊이를 더합니다. 
 

※ 잠깐,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모든 것을 기억한 불행한 사람

루이스의 기억력과 다르게,
모든 것을 기억하는 실제 사례가 있습니다. 
과거 실제 존재했던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인 러시아 신문기자 솔로몬 셰레셰프스키입니다.

모든 것을 기억한 러시아 신문기자

 
모든 것을 기억한 그는 불행했다고 해요. 

  • 한 번 들은 숫자·단어·문장 → 수십 년 후에도 그대로 재현
  • 의미 없는 숫자열도 순서·억양까지 정확히
  • 학습이 아니라 자동 저장

이 능력은 우연히 발견되었어요.
회의 내용을 정리하지 않아서 상사가 화를 냅니다.
"왜 메모를 안 해?"
"전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회의 내용을 거꾸로, 임의의 지점부터 말해보라하자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재현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알렉산드르 루리야를 만나 30년 넘게 연구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의 암기능력은 공감각이라 하고, 그의 삶이 불행했던 건 아마도 망각의 능력이 없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70자리 숫자도 한 번 듣고 평생 기억을 하고, 뜻도 모르는 외국어의 발음과 강세까지 완벽하게 기억한다고 하는군요.
오히려 사유, 성장, 치유에는 독이 되는 그의 자동기억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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